한·일 정상의 ‘드럼 외교’ 메시지

공지사항

15/01/2026 16:14

일본 총리와 한국 대통령이 함께 드럼을 연주하며 K-팝 두 곡을 선보이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는 한동안 긴장 국면을 이어온 양국 관계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이재명 한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오후 일본 중부 나라현을 방문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의 이번 만남은 취임 이후 두 번째 직접 회동이다. 핵무기 문제, 핵심 광물, 경제안보 등 주요 현안을 놓고 수 시간에 걸친 논의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다카이치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즉흥적인 문화 교류 행사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호텔 회의실 내부에는 두 대의 드럼이 마련됐고, 대학 시절부터 드럼 연주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총리가 직접 이 대통령에게 연주법을 설명했다. 일본 측이 준비한 네이비 색상의 커플 의상을 착용한 두 정상은 방탄소년단(BTS)의 ‘Dynamite’와 ‘Golden’ 등 K-팝 곡 두 곡을 함께 연주했다. 약 20분간 이어진 공연 동안 주변에 있던 보좌진들은 박수로 호응했다.

이 대통령은 연주 도중 “리듬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네요, 총리님”이라고 말했고, 다카이치 총리는 “아니에요. 정말 잘하셨습니다. 인상적이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이 장면은 현지 언론에서 ‘드럼 외교’로 불리며, 지정학적 불안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일 관계가 완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벤트로 해석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 국가이지만, 1910~1945년 일제강점기를 둘러싼 역사 문제로 인해 오랜 기간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왔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해 각각 취임했을 당시에도 양국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이 대통령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대일 관계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으며,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일본 군국주의가 한반도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가 “과장됐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동아시아 정세가 급격히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 두 정상은 과거사가 미래 협력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드러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직접 이 대통령의 숙소를 찾아 90도로 허리를 굽혀 맞이했는데, 이는 일본 외교 관례상 극히 이례적인 예우로 받아들여진다.

Tổng thống Hàn Quốc Lee Jae-myung (trái) và Thủ tướng Nhật Bản Sanae Takaichi cùng nhau chơi trống ở Nara hôm 13/1. Ảnh: AFP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총리께서 관례를 깨고 직접 맞이해 주셔서 어떻게 예를 갖춰야 할지 몰랐다”며 “일본 국민은 물론 한국 국민들도 이 같은 진정성 있는 제스처에 깊이 감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조직범죄 대응, 공급망 안정 및 효율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2023년 출범한 미국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체제를 지속 유지하겠다는 방침도 재확인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 전략 컨설팅 기업 ‘아시아 그룹(The Asia Group)’의 미라 랩-후퍼 연구원은 이번 ‘드럼 외교’에 대해 “양국 정상 모두에게 매우 영리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양국 정치의 중심축이 점차 중도적 방향으로 이동하며, 실질적인 파트너십 유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은 이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핵심 파트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국제 질서의 근간이 빠르게 재편되는 시점에 이러한 움직임이 나온 점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같은 날 엑스(X·옛 트위터)에 “이 대통령이 2025년 한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계기 첫 회동에서 ‘드럼 연주는 오랜 꿈’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나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은 단 5~10분 만에 드럼 연주를 완벽히 익혔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대통령 역시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지만, 연주를 이어갈수록 소리가 점점 하나로 어우러졌다”며 “때로는 박자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조화를 이루려 노력했다. 이는 앞으로 한·일 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닮아 있다”고 엑스에 적었다.

이번 나라 방문에서 이 대통령은 백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세계적 불교 사찰 호류지(法隆寺)도 찾았다. 호류지에는 ‘백제관음(百濟觀音)’ 또는 ‘구다라 관음’으로 불리는 불상이 보존돼 있으며, 고대 백제 예술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두 정상은 14일 오전 함께 사찰을 참배했다.

현장에서 이 대통령은 먼저 대기하고 있던 다카이치 총리와 악수한 뒤 “젊었을 때 학교 견학으로 이곳에 오신 적이 있느냐”고 묻는 등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위성락 한국 국가안보실장은 14일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성과는 두 정상 간에 형성된 개인적 친분과 신뢰”라며 “앞으로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해결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CNN, 코리아헤럴드, 재팬타임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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