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정형 깬 파격, 화순 운주사

문화예술 · 관광

17/04/2026 15:01

한국의 불교 유산은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처럼 정교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세계를 매료시켜 왔다. 그러나 한반도 남단 전라남도 화순에 이 모든 정형을 거부하는 파격적인 불교 유산이 숨 쉬고 있다. 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이다. 
 

운주사는 정형화된 전통 사찰의 틀에서 벗어난 단순함과 민중적인 해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절집과 차별화된다. 사찰 경내에는 불상과 석탑 제작에 사용된 석재를 채굴한 채석장과 운반 흔적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천 년 전 불사의 제작 공정 전반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학술 가치를 지닌다. 특히 한 공간에 각기 다른 양식의 탑이 모여 있는 모습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운주사의 진면목은 여러 신앙 체계를 하나로 품은 포용성에 있다. 10세기부터 16세기 말에 걸쳐 조성된 다양한 형태의 석불과 석탑, 별자리 신앙의 흔적인 칠성석에는 도교와 천문 숭배, 민간 신앙이 불교와 융합된 독특한 세계관이 녹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신앙이 한 사찰 안에 집약적으로 결합한 사례는 동아시아에서도 극히 드물다. 운주사가 인류 유산으로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다.

지형을 다루는 방식도 독특하다. 운주사는 영산강 지류인 대초천 상류, 해발 100m 내외의 완만한 산지 골짜기를 따라 터를 잡았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계곡 양옆 산등성이마다 줄지어 탑과 석불을 세운 것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려 한 독창적 배치의 결과다.

운주사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고려 중기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크게 번성한 사찰로 추정할 뿐이다. 15세기 후반 중창 이후 정유재란의 전화 속에 폐사의 아픔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19세기 중반 소규모 중창을 시작으로 20세기 들어 수차례 정비와 복원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현재 이곳에는 완전한 형태의 석탑과 석불상뿐 아니라 미완성 또는 파손된 유물을 포함해 석탑 유물 약 141기, 석불상 약 115채가 남아 있다. 

▲ 와불 인근에 위치한 칠성바위.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이 불교와 결합해 사찰 공간 안에 자리 잡은 사례다.



산과 들에 흩어진 70여 기의 석불은 수십 센티미터 크기에서부터 10m 이상에 이르는 대형 불상까지 규모가 다양하다. 평면적이고 소박한 조형, 다소 비례가 맞지 않는 신체 표현은 고려시대 지방 불교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석탑 역시 파격의 연속이다. 형태와 문양 표현이 매우 다양하다. 3층·5층·7층 등 층수 또한 일정하지 않다. 원형 기단 위에 조성된 탑이나 원반을 겹겹이 쌓은 듯한 독특한 형식의 탑 등 일반적인 불교 석탑과는 다른 조형성이 두드러진다.

운주사를 대표하는 유산은 골짜기 서쪽 언덕 위에 있는 거대한 와불이다. 길이 약 12m, 너비 약 10m에 이르는 이 불상은 완전히 누워 있는 형태로 조성됐다.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로 꼽힌다. "이 부처가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라는 전설은 천 년 전 이곳을 일궈낸 백성의 간절한 이상향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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